[ 서론 ] 일부 발췌
1. 연구목적 및 연구방향
고봉과 퇴계의 사칠논변을 살펴보기 위하여 유가의 선(善)의 두 면모에 대하여 알아보고
선의 개념을 명확히 제시한 이후에 사단ㆍ칠정의 연원과 배경을 살펴보겠다.
이는 사칠논변을 살펴보는 중요한 밑거름이다.
그런 연후에 고봉과 퇴계의 사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개혁정책을 실시할 수 있었다. 공민왕 시해 이후 권문세력이었던 이인임 일파 등이 우왕을 옹립함으로써 신흥사대부 세력에 대한 억압이 이루어졌으나 결국은 그 일파가 숙청 되고 남쪽 지방에서 왜구 세력을 토벌하며 성장하고 있었던 이성계와 같은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이므로 칠정과 마찬가지로 사단도 선악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당시의 성리학자들을 당혹케 했다.
“퇴계고봉 율곡 우계는 모두 사단을 순선하다고 여겼으나 주자는 사단에도 불선한 점이 있다고 여겼다. 알지 못하겠도다. 네 분 선생님들은 주자의 이 말을 보지 못했는가.
다양한 사상적 대립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간단하게 분석?정리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정치적 분립(分立)도 함께 살펴보았다. 이렇게 소설 속에 나타난 사상들을 정리하다보니 저자 이인화가 생각보다는 치밀하게 소설에 대한 배경을 연구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엿보이면서
조선사회에 뿌리내리면서 선비의식은 사대부들의 규범으로 정착되고, 성리학적 교육의 과제는 선비의식의 함양과 그 실천으로 귀착되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여겨지는 퇴계 이황이 주목할 만한 교육사상가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황의 교육사상은 성리학적 교육철학 체계
조선시대 유적지를 둘러본 경험을 정리할 것.1.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유적지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특별한 기억이 있던 곳을 우선으로 선택할 것.2. 잘 알려진 유적지는 유적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보다 그곳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 비중을 두고 충분히 서술할 것.3. 인터넷자료, 서적 등은 공간 및 관련
엄밀성만이 추구되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주자학이 한국의 성리학으로 토착화되는 기반이 구축되었으며, 유학사상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7. 이황과 이이의 비교 분석
1) 이황 李滉 [1501-1570]
조선시대의 학자·문신.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 시호는 문순(文
퇴계는 자신의 이론을 다시 수정하여 ‘사단의 발은 순리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은 겸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사단지발순리고무불선 칠정지발겸기고유선악)’라고 제시하면서 고봉에게 의견을 묻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 8년에 걸친 퇴계와 고봉 사이에 벌어진 사칠논쟁의 발단이
사단칠정논쟁 정이천은 희ㆍ노ㆍ애ㆍ락ㆍ애ㆍ오ㆍ욕의 7정을 인의예지신의 성과 직접 결부시켰다. 훗날 중국에서는 아무도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 문제점을 지적해주지 못했다. 한국 성리학의 사단칠정논변은 바로 이 문제에서 비롯한다.
정이천의 성정론을 이어 완성시킨 주자의 정이론에
조선조 주자학자들이 '사단'과 '칠정'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인간의 심리 현상을 분석한 것은 이유가 있다. 더욱이 이러한 분석이 개인의 주관적 독단에 그치지 않고 논쟁을 통해 객관적 사고로 넘어가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은 특이하다. 사상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 논쟁은 심성론과 이기론의 결